창세기 4장 묵상 에세이
질투의 불꽃, 그러나 남겨진 표식
"가인이 여호와께 말하되 내 죄벌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 없나이다."(창세기 4:13)
첫 번째 인간이 땅을 딛고 살아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에덴을 잃은 아담과 하와는 이제 황량한 땅 위에서 살아야 했다. 고통 속에서 노동하며,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셨다.
그 땅에서 첫 번째 생명이 태어났다.
"아들을 낳으매 가인의 이름을 지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창세기 4:1)
첫 번째 아들, 기대 속에 태어난 가인
가인은 사랑받고 태어난 아이였다. 하와는 그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떠올렸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 그는 에덴을 잃고 난 후, 처음으로 받은 생명의 선물이었다. 부모는 가인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 아이는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과 다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아벨. 아벨이라는 이름에는 허무함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첫째를 품을 때와는 달리, 둘째를 안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면서, 인간의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가인은 기대와 소망의 이름을 가졌지만, 아벨은 덧없음을 품은 채 태어났다.
가인의 분노, 불타는 질투
두 형제는 자라났다. 가인은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목자가 되었다. 각자 땀을 흘리며 삶을 일구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 가인은 자신의 밭에서 거둔 소출을 바쳤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처음으로 거절당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셨다고 느꼈다.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 불길은 분노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질투였다.
‘왜 하나님은 내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나는 애써 밭을 일구고, 땀을 흘려 곡식을 거두었는데.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기쁘게 받으셨다. 그가 나보다 나은 존재란 말인가?’
질투는 서서히 가인을 집어삼켰다. 하나님은 그를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네가 분을 내면 어찌 됨이며,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창세기 4:7)
그러나 가인은 들을 마음이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형제의 피, 땅을 적시다
어느 날, 가인은 아벨을 들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을 들어 동생을 쳤다. 그것은 첫 번째 죽음이었다.
아벨의 피가 땅에 스며들었다. 생명이 처음으로 끊어지는 순간, 땅은 그 피를 흡수하며 신음했다. 하늘은 조용했고, 바람도 멈춘 듯했다. 가인은 서 있었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쓰러진 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순간 후련함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9)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질문하셨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을 부르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가인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가인은 거짓으로 대답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이까?"
그 말 속에는 차가운 냉소가 묻어 있었다. 처음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가인은 자신의 죄를 감추고 싶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나에게 호소하느니라." (창세기 4:10)
아벨의 피가 땅 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그가 아무리 밭을 갈아도, 땅은 그에게 결실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땅 위에서 방황하는 자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표식, 그리고 은혜
가인은 절망했다. 그는 엎드려 흐느꼈다.
"내 죄벌이 너무 무거워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벌하셨지만, 그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다. 가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두려움에 떨었다. ‘이제 누구든 나를 보면 나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에게 표식을 주셨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일곱 배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가인은 하나님의 표식을 지닌 채, 노드 땅으로 떠났다. 그는 다시는 에덴 근처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가인일까, 아벨일까?
우리는 가인처럼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거절을 경험하면 우리 안에서 질투와 분노가 타오른다. 가인은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동생을 죽였다. 그의 손에 묻은 피는 단순한 살인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부르신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그 질문은 단순히 가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질투하지 않는가? 타인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가? 결국, 우리도 가인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셨다.
훗날, 또 한 분의 형제가 피를 흘리셨다.
그분의 피는 아벨의 피처럼 땅을 적셨다. 그러나 그 피는 복수의 외침이 아니라, 용서의 선포였다.
"예수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나은 것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2:24)
가인은 저주받고 떠났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이제 숨지 않는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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