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음을 잡고
삶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 질문이 떠올랐다. 흐릿한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도로 위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불규칙하게 흩날리는 낙엽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무작위로 일어나는 우연의 산물 같으면서도, 마치 정해진 틀 안에서 어김없이 맞물려 움직이는 필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쯤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우리가 살아온 길 위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어떤 길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어떤 길은 선택할 수 없이 떠밀리듯 걸어왔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그 모든 갈림길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한 번의 우연한 만남, 우연한 선택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필연을 이루었다. 나는 이것을 '우연이 낳은 필연'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몇 년 전, 무심코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단어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순종(順從)’. 그때는 단순히 마음에 와닿아서 적어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은 내 삶에 놓인 하나의 단서였다. 순종이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만든 존재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자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하나둘 연결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나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이루고 싶어 했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초조했고,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면 쉽게 실망했다. 하지만 삶은 그런 법이 아니었다.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조율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 속에서도 필연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결국 신앙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도 아신다. 그러므로 내 삶의 조각들이 무작위로 흩어진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 그 모든 순간은 하나의 거대한 그림 속에 포함된 필연적인 점과 선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내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순간순간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조각들이 아름답게 맞물려 하나의 완전한 그림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리라. 그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삶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한다.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치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실패도, 아픔도 결국엔 우리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믿음이란 결국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아도, 나는 걷겠다'는 결심이 아닐까.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이 있을 테니까.
나는 오늘도 블로그를 다시 운영한다. 그동안 흩어졌던 생각들을 모으고, 메모들을 정리한다. 어쩌면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 내 글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묵묵히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길을 발견하는 것.
신앙의 길도, 삶의 길도 그렇다. 때로는 보이지 않고, 때로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결국 도착할 곳에 닿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 속에 놓인 작은 조각들이다. 그리고 그 그림을 완성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닌, 우리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그러니 나는 안심하고 걸어간다. 오늘의 작은 우연이 내일의 필연이 될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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